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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증보염의편(廉義篇 1, 2, 3)

1, 신라시대 인관과 서조의 이야기
印觀이 賣綿於市할새 有署調者以穀買之而還이러니 有鳶이 攫其綿하여
墮印觀家어늘 印觀이 歸于署調曰 鳶墮汝綿於吾家라 故로 還汝하노라
署調曰 鳶이 攫綿與汝는 天也니라 吾何爲受리오 印觀曰 然則還汝穀하리라
署調曰 吾與汝者 市二日이니 穀已屬汝矣니라 二人이 相讓이라가
幷棄於市하니 掌市官이 以聞王하여 ?賜爵하니라
(인관이 매면어시할새 유서조자이곡매지이환이러니 유연이 확기면하여
타인관가어늘 인관이 귀우서조왈 연타여면어오가라 고로 환여하노라
서조왈 연이 확면여여는 천야니라 오하위수리오 인관왈 연즉환여곡하리라
서조왈 오여여자 시이일이니 곡이속여의니라 이인이 상양이라가
병기어시하니 장시관이 이문왕하여 병사작하니라)
☞ 인관이 시장에서 솜을 팔 때에 서조라는 사람이 곡식으로써 그것을 사서 돌아오더니 솔개가 그 솜을 빼앗아 인관의 집에 떨어뜨리거늘 인관이 서조에게 돌아가서 말하기를 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느니라. 그런 고로 너에게 돌려주노라.
서조가 가로되 솔개가 솜을 낚아채서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이니라. 내가 어찌 받으리오. 인관이 가로되 내가 너에게 준 것은 장일 두 번 지났으니 곡식은 이미 그대에게 속한 것이니 하고 두 사람은 서로 사양하다가 아울러 시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은 관리가 써 왕에게 돌려주어서 아울러 벼슬을 받았다.
印觀 : 신라 때의 사람이라 전해짐
2, 조선시대 홍기섭의 이야기
   洪耆燮이 少貧甚無料러니 一日早에 婢兒踊躍獻七兩錢曰 此在鼎中하니
米可數石이요 柴可數馱니 天賜天賜니다 公이 驚曰 是何金고
卽書失金人推去等字하여 付之門楣而待러니 俄而姓劉者 來問書意어늘
公이 悉言之한데 劉曰 理無失金於人之鼎內하니 果天賜也니라
?取之니잇고 公이 曰 非吾物에 何오 劉 俯伏曰 小的이 昨夜에
爲?鼎來라가 還憐家勢蕭條而施之니 今感公之廉价하고 良心自發하여
誓不更盜하고 願欲常侍하오니 勿慮取之하소서
公이 卽還金曰 汝之爲良則善矣나 金不可取라하고 終不受러라 後에
公이 爲判書하고 其子在龍이 爲憲宗國舅하며 劉亦見信하여 身家大昌하니라
(홍기섭이 소빈심무료러니 일일조에 비아용약헌칠량전왈 차재정중하니
미가수석이요 시가수타니 천사천사니다 공이 경왈 시하금고
즉서실금인추거등자하여 부지문미이대러니 아이성류자 내문서의어늘
공이 실언지한데 유 왈 이무실금어인지정내하니 과천사야니라
합취지니잇고 공이 왈 비오물에 하오 유 부복왈 소적이 작야에
위절정래라가 환연가세소조이시지니 금감공지염개하고 양심자발하여
서불갱도하고 원욕상시하오니 물려취지하소서
공이 즉환금 왈 여지위량즉선의나 금불가취라하고 종불수러라 후에
공이 위판서하고 기자재룡이 위헌종국구하며 유역견신 하여 신가대창하니라)
☞ 홍기섭이 젊어서 가난이 심하여 헤아릴 수조차 없더니 하루아침에는 계집아이가 뛰어와서 일곱 냥의 돈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 돈이 솥 안에 있었다 하니 쌀이 몇 석이오 나무는 몇 짐이니 하늘이 준 것이오. 하늘이 준 것입니다.
공이 놀라서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돈인가 하고 곧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미루어 가져가라는 글자의 글을 써서 대문의 문지방에 붙이고 기다렸더니 잠시 후에 성이 유 씨라는 사람이 와서 글의 뜻을 묻거늘 공이 다 말을 하니 유씨가 가로되 남의 솥 안에 돈을 잃어버릴 이유가 없으니 과연 하늘이 준 것입니다. 어찌 취하지 아니하십니까? 공이 가로되 나의 물건이 아닌데 어찌 하겠는가?
유씨가 숙여 엎드려 가로되 소인이 어젯밤에 솥을 훔치러 왔다가 집의 형세가 쓸쓸함에 불쌍히 여겨 도로 베풀었더니 이제 공의 청렴함에 감동하고 양심이 발하여서 다시는 도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오니 원컨대 항상 모시고자 하나니 염려치 말고 취하소서. 공이 곧 도로 돈을 주고 가로되 네가 어질게 된 것은 좋으나 돈을 취할 수 없다하고 마침내 받지 않았더라. 후에 공이 판서가 되고 그의 아들 재룡이 헌종의 장인이 되며 유씨 또한 믿음을 보여서 자신의 집이 크게 번창한다.
洪耆燮 : 이조 말기 사람으로 판서를 지냈으며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음
3,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이야기
  高句麗平原王之女 幼時에 好啼러니 王이 戱曰 以女로 將歸于愚溫達하리라
及長에 欲下嫁于上部高氏한테 女 以王不可食言으로 固辭하고
終爲溫達之妻하다 蓋溫達이 家貧하여 行乞養母러니
時人이 目爲愚溫達也러라 一日은 溫達이 自山中으로 負楡皮而來하니
王女訪見曰 吾乃子之匹也라하고 乃賣首飾而買田宅器物하여 頗富하고
多養馬以資溫達하여 終爲顯榮하니라
(고구려평원왕지녀 유시에 호제러니 왕이 희왈 이여로 장귀우우온달하리라
급장에 욕하가우상부고씨한테 여 이왕불가식언으로 고사하고
종위온달지처하다 개온달이 가빈하여 행걸양모러니
시인이 목위우온달야러라 일일은 온달이 자산중으로 부유피이래하니
왕녀방견왈 오내자지필야라하고 내매수식이매전택기물하여 파부하고
다양마이자온달하여 종위현영하니라)
☞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 어렸을 때에 울기를 잘하여서 왕이 장난으로 말하기를 너는 장차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리라. 장성함에 미쳐서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고 하는데 딸이 왕으로 식언을 하면 아니 된다 하고 굳게 사양하고 마침내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대개 온달이 집이 가난하여 걸인 행세를 하여서 어머니를 봉양하는데 그 때 사람들이 온달을 보고 바보 온달이라 하였더라. 하루는 온달이 산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데 왕의 딸이 찾아보고 말하기를 나는 이에 그대의 배필이라 하고 이에 머리의 장식을 팔아서 밭과 집과 그릇을 사니 자못 부하고 말을 많이 길러서 온달을 도와서 마침내 현달하고 영화롭게 되었다 한다.
高句麗平原王 : 고구려 12대 임금